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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로장려금 정기신청 반기신청

     

     

    근로장려금은 정기신청과 반기신청이 있습니다. 정기신청과 반기신청은 몇가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신청시기와 신청방법등을 꼼꼼히 따져야 합니다.

     

     

    1. 근로장려금이란?

     

    일은 하지만 소득이 적어 생활이 어려운 근로자, 사업자(전문직 제외)가구에 대하여 가구원 구성과 근로소득, 사업소득 또는 종교인소득에 따라 산정된 근로장려금을 지급함으로써 근로를 장려하고 실질소득을 지원하는 근로연계형 소득지원 제도입니다.

    근로장려금은 가구원 구성에 따라 정한 부부합산 총급여액 등을 기준으로 지급액을 산정합니다.

     

    근로장려금 정기신청 반기신청
    근로장려금 정기신청 반기신청

     

    2. 근로장려금 상반기, 하반기 신청

     

     

    상반기는 3월
    하반기는 9월


     

    근로장려금 상반기 신청은 3월, 하반기신청은 9월에 가능합니다. 그래서 상반기, 하반기 신청을 반기신청이라고 부르며, 주의할점은 근로장려금 반기신청은 근로소득자만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3. 근로장려금 정기신청과 반기신청 차이

     

     

    [정기신청]
    모든 사람 가능


    [반기신청]
    근로소득자만 가능

     

     

    정기의 경우 근로자 외 사업자, 종교인 등 모든 사람들이 신청할 수 있고, 반기의 경우 근로자만 신청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5월에는 근로소득자 포함 종합소득세 신고를 하는 모든 사람, 3월과 9월에는 근로소득자만 신청가능합니다. 근로장려금 정기신청과 반기신청은 중복이 불가합니다.

     

    근로장려금 정기신청 반기신청

     

     

    정기신청 

    근로소득자 외에 사업자, 종교인 등 소득이 있는 거주자로서 소득재산 요건을 충족할 경우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 🚩 신청기간 : 5월 
    • 🚩 지급일 : 8월 말 
    • 🚩 기한 후 신청 : 6월 - 11월
    • 🚩 기한 후 지급 : 10월 말 - 다음 해 1월 말​

     

     

     

     

     

     

     

    ▶  반기신청 
    근로소득만 있는 거주자로서 소득.재산 요건을 충족하면 신청이 가능합니다.

    • 🚩 상반기 분 신청 : 9월 1일 - 9월 15일
    • 🚩 하반기 분 신청 : 3월 1일 - 3월 15일 
    • 🚩 상반기 분 지급일 : 12월 말 지급(35%)
    • 🚩 하반기 분 지급일 : 6월 말 지급 (100%) 

     

     

     

     

     

    4. 근로장려금 반기 지급금액

     

    근로장려금 정기신청 반기신청


    근로장려금 산정액의 35% 를 반기별로 지급하며, 소득귀속연도 다음 해 5월에 정기 신청을 했을 경우의 지급액과 비교하여 정산하게 됩니다.

    🚩 상반기 신청자
    총 급여를 12개월로 환산하여 근로장려금 지급액을 계산합니다.

    🚩 하반기 신청자
    상반기와 하반기의 총 급여를 합산해 근로장려금 지급액을 산정합니다.

     

     


     

    근로장려금 정기신청 반기신청
    근로장려금 정기신청 반기신청
    근로장려금 정기신청 반기신청

     

     

    오늘은 근로장려금 정기신청과 반기신청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근로장려금에 관한 모든 내용이 이 블로그에 담겨 있으니 다른 글들도 살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

     


     

    ⬇️  근로장려금 체험 수기  ⬇️

     

    아래의 글들은 국세청에 있는 근로장려금으로 새로운 삶의 활력소를 얻으신 분들의 실제 체험수기입니다. 

     

    내 마음속의 쉼표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음을.
    이 순간에도 대한민국이 내게 따스한 손길을 보내주고 있다는 것을. 젊은 날의 죽음이 내 아버지의 운명이었다면 그날 이후. 가난과 일은 나의 숙명이 되어 거머리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소녀 가장이란 이름표는 나의 염려보다 더 무겁고 엄중했다. 고등학생이란 신분으로 뛰어들어야 했던 사회는 생각보다 더 차갑고 냉정했다. 신문 배달, 서빙, 설거지, 건설 현장 잡부, 주유소, 물류센터, 백화점, 마트 판매원 등등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숨이 가쁘게 살았다.

     



    못 배우고 가난하더라도 몸이 부서질 만큼 성실히 일하면 살림살이는 나아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병약하셨던 엄마와 연로하셨던 할머니. 어린 동생의 학비까지 대어야 했던 삶은 부단히도 퍽퍽하였지만 그래도 젊었었기에 일말의 기대는 남아 있었다. 하지만 조금 나아질 만하면 아버지의 빚쟁이들이 어찌 알고 찾아 들었다. 또 이제 끝났겠지 했을때엔 할머니께 병마가 닥쳐왔다.
     



    배우고 싶은 것. 하고 싶었던 것. 나 자신은 온전히 포기한 채 가장이라는 책임감으로만 버텨냈던 이삼십 대가 시나브로 지나갔다. 그간 할머니를 머나먼 곳으로 떠나보냈고 남동생만이라도 번듯한 가정을 꾸릴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그리 덜컥 나도 모르는 사이 마흔 줄에 들어서 있었다.

     



    나도 보란 듯이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은 내 젊은 시절 그 한순간의 치기였을까. 푸르르던 젊음은 한낱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린 지 오래였다. 삼십 년을 가까이 일만 하였어도 뻔한 형편은 뻔한 그대로였다. 닥치는 대로 일하느라 여기저기를 떠돌았으니 이렇다 할 경력도 이력도 쌓은 것이 없었다. 불혹을 넘겼음에도 일용직을 전전하는 신세를 면치 못하였으니 세상살이 자체가 귀찮고 무기력하기만 했다. 거기에다 내 유일한 재산이었던 건강마저 삐걱대고 있었다. 수시로 찾아오던 복통. 높아만 가는 혈압. 연유를 알 수 없는 피곤함. 부서지는 머릿결만이 내 것이었다.

     



    그러함에도 갚아야 할 빚만이 끈질기게 남아 있었다. 도움을 받을 곳도 의지할 곳도 없으니 이를 꽉 깨물고 일을 해야 했다. 가시밭길을 헤매이는 듯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웠다. 그래도 손님들 앞에선 새하얗게 웃어 보였다. 내 정신 상태가 어떠하든 고객들에게 친절해야 하는 것은 직장인인 나의 의무였다.

     


    수면제를 털어 넣어야만 잠들 수 있는 날들이 점점 늘어만 갔다. 입안이 까끌거려 끼니를 거르는 일도 일쑤였다. 오랜 친구는 너의 몸과 마음이 보내는 적신호를 간과하지 말라며 정신과를 찾아볼 것을 진지하게 충고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내게 진짜 필요한 것은 휴식이라는 것을. 잠시라도 며칠이라도 쉴 수 있다면 조금은 괜찮아질 것 같았다. 허나 하루라도 빠지려면 눈치를 봐야 하는 직장. 빠듯하다 못해 텅텅 비어 있는 통장의 잔고는 찰나의 휴식도 허락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시영씨도 신청했지요? 근로장려금! 나는 오늘 신청했어요!” 함께 일하는 동료의 이야기에 서둘러 홈택스에 접속하였다. 동료의 말처럼 나 역시 근로장려금 대상자였다. 야호~ 나도 몰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마치 복권에 당첨된 듯 금액을 떠나 괜스레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오랫동안 일용직으로만 근무해 왔기에 보너스라곤 받을 일이 만무했고 누군가에게 용돈이라도 받아 본 것은 너무나도 까마득한 옛날이었다.

     


    근로장려금을 스마트폰으로 너무도 간단히 신청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내겐 무척 신기한 일이었다. 근로장려금이 내 통장으로 입금되었다는 알람이 오는 날까지 기다리는 시간들도 소풍 가는 아이처럼 마냥 마음이 설렜다.

     


    막바지 더위가 활개를 치던 어느 날. 나는 20여 년 만에 처음으로 홀가분한 마음으로 휴가를 떠났다. 2박 3일 동안 바다가 보이는 작은 공간에서 조용히 오롯이 나만을 위한 휴식을 가질 수 있었다. 벗어날 수 없던 가난과 온몸을 짓눌렀던 일에서 벗어나 나만의 자유를 만끽하였다. 뜨거운 햇살 아래 시원한 파도의 내음을 맡으며 책도 읽고 음악도 들었다. 그리고 알 수 있었다. 외롭고 힘겨운 나날들이었지만 대한민국에서 살고 일하는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음을. 이 순간에도 대한민국이 내게 따스한 손길을 보내주고 있다는 것을.

     



    근로장려금이 아니었으면 감히 꿈도 꾸지 못했을 휴가였다.
    짧지만 온전한 쉼의 시간을 보내며 더 열심히 일하기 위해 더 열렬히 살아가기 위해 더 높이 날아오르기 위해 가끔은 모든 것을 잠시 잊고 훌훌 털어내고 쉬어가야 한다는 것을.

    누군가에게나 삶과 일의 쉼표가 필요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근로장려금이란 소득은 높지 않으나 성실히 일하는 근로자의 근로의욕을 북돋아 주는 제도이다. 근로장려금은 그 소중한 목적과 취지 그대로 어떤 근로자에겐 감사한 장려금이 되었을 것이며 또 어떤 이에게는 고마운 격려금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모두에게 쉼표가 되어주었을 것이다. 열심히 일해 왔으니 잠시라도 숨을 돌려보라는. 근로장려금은 근로자의 오늘을 존중하며 내일을 응원하는 대한민국이 정성스럽게 보내온 육체와 정신. 그리고 마음속의 ‘,’ 였다.

     

     

     

    장려금 입금되는 날, 하루종일 흥얼거립니다

     

    병원비 없어서 돈 빌려주신 분에게 갚고, 그동안 저에게 신경 써주신 분에게 밥 한 번, 커피 한번 사드리면서 감사 표현해서 너무 행복했고요.

     


    안녕하세요. 저는 청주에서 중학생 남매를 홀로 키우고 있는 박승희라고 합니다. 이혼을 한 건 아니고요, 2022년 1월에 남편이 조증과 공황장애 진단을 받고 8년 전부터 해오던 배달 일을 못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은 같은 해 9월에 시어머니랑 형님이 살고 계시는 강화도에 가서 치료를 받으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배달 일하기 전에는 자동차 부품 회사에 다녔었고요. 나이가 들어가니 회사에서 잘리기 전에 퇴사해서 사업을 해야겠다고 해서 저와 시댁 식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신용대출과 집 담보대출 등등 무리하게 사업 시도하다가 시작도 못 하고 빚만 지고 신용불량자가 돼버렸습니다.

     



    결국 집은 경매로 넘어갔고 전자제품에는 압류 딱지가 붙여지고…
    아이들이 어렸기 때문에 저는 한 푼이라도 벌려고 가사도우미와 자동차부품을 조립하는 부업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편은 중국집 배달을 시작으로 배달 기사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요.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33평 아파트가 경매로 넘어가서 그나마 조금 있는 돈으로 방 두 개 있는 20평 빌라 월세에 살다가 5년 후 전셋집으로 이사를 가게 됐습니다. 너무 좋았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날 남편이 배달 쪽으로 사업을 하겠다고 하는 거예요. 신용불량이어서 대출을 못 받으니 주변 지인들에게 몇십만 원씩 빌리고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았는지 당신 남편이 자기한테 돈 얼마를 빌렸는데 남편이 못 갚는다고 하니 저보고 갚으라는 거예요. 저는 매일 밤낮을 울면서 보냈습니다. 왜 또... 그럴까? 왜... T.T

     



    빌리는 것만으로는 사업 자금을 못 모으니 배달 일했던 회사 본사에 가서 회장님을 만나겠다고 하면서 서울로 가더라고요 가지 말라고 사정도 해보고 싸우기도 하고 설득도 시켜봐도 도저히 안되더라고요.

    그러다가 2022년 1월 밤, 서울에 있는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남편분이 고시원에서 몰래 자다가 주인에게 들켜서 경찰서에 갔다는 겁니다. 형사분은 처벌을 하려고 했는데 대화해보니 정신 쪽으로 이상 있는 것 같아서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한 상태이니 3일 후에도 입원 계속하려면 보호자 동의한다는 사인이 필요하다고…. 그래서 그 후로 두 달 입원하고 지금까지도 치료받는 중입니다.

     



    다행히도 저는 작은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되던 해부터 병원 일을 하게 돼서 가사도우미와 부업보다는 수입이 더 좋았습니다. 그렇지만 두 아이 키우고 세금 내고하다 보니 제 수입으로는 매달 빠듯하더라고요. 저금은 단 만 원도 못 하고 있고, 큰애 중3 작은애 중1 키우면서 학원비, 식료품비, 세금…등등 아끼면서 산다고 하는데도 한 달 한 달 버티기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래도 아이들과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사춘기 아이들인데도 엄마 힘든 거 아는지 집안일도 도와주고 친구들보다 용돈도 적게 주는데도 불평 없이 지냈고요. 큰애는 집안일하고 있으면 “엄마 안 힘들어? 그만하고 쉬어”라고… 합니다.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무너질 수 없고 아무렇지 않은 듯 힘들지 않은 듯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러던 저에게 건강에 적신호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2023년 3월 초 위궤양과, 이유 없이 고열이 계속되고 여기저기 처음 느껴보는 근육통과 발진… 처음에는 코로나와 독감 검사를 해봐도 음성으로 나오고 정밀검사를 해보자는 의사 권유로 피검사를 해봤는데 자가면역질환이 의심된다고 종합병원에 의뢰서 갖고 감염내과와 류마티즘내과에서 정밀검사를 해보라고 하시는 겁니다.


    직장 쉬는 날 가야 하기 때문에 어렵게 예약을 해서 가봤습니다. 여러 번에 피검사 결과… 자가면역질환이 몸 안에 내재되어 있으니 증상이 또 생기면 더 정밀 검사해서 치료를 받아야 된다는 겁니다. 한 달 동안 절 괴롭혔던 병이 자가면역질환… 증상이 처음 발병되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너무 무서웠습니다. 암이면 어쩌지...우리 아이들은...T.T…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아이들 때문에 건강해야 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저뿐이니까요… 남편은 언제 올지 모르고... 저까지 아프면 안되니까요. 저의 상황과 사정을 아는 제 친정 언니와 동생, 제 주변 지인들까지 돈 빌려주시는 분, 쌀 주시고 식료품 이것저것 주시는 분, 반찬 해 먹기 힘들 때 시켜 먹으라고 치킨 쿠폰 보내주시는 분... 너무 고맙고 눈물만 났습니다. 그 후로는 언니가 사준 영양제 먹고, 밥도 잘 챙겨 먹고 증상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어느 날 문자가 왔습니다. 근로장려금, 자녀장려금 신청하라고…
    잠시 잊고 있었다가 문자를 받으니 정신이 번쩍 들면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제 재산에 비하면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단 몇십만 원이라도 전 너무 소중하고 행복했습니다.

    장려금 입금되는 날 하루 종일 흥얼거리면서 지냈던 기억이 납니다.
    병원비 없어서 돈 빌려주신 분에게 갚고, 그동안 저에게 신경 써주신 분에게 밥 한 번, 커피 한번 사드리면서 감사 표현해서 너무 행복했고요.

    아이들에게 용돈 조금 더 주면서 고마운 친구들에게 맛있는 거 사주라고도 했습니다. 아이들은 너무 좋아하면서 엄마 장려금 매달 받았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일 년에 한번 받는 근로장려금과 자녀장려금이 저와 아이들에게는 빛 그 자체였습니다.

    법적인 문제 때문에 서류상으로는 장려금이 제 수입과 재산에 비하면 적은 금액이어서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너무 감사하고 내년을 또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처럼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장려금을 주시는 정부와 관계자분들께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