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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3월 근로장려금 반기 신청 기간과 신청방법, 지급일 등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바쁘신 분들을 먼저 근로장려금 신청하실 분들은 아래에서 바로 신청이 가능하오니, 빠르게 근로장려금 신청하시고 시간 절약하시기 바랍니다.
     

     

     

     

     

    1. 근로장려금 반기 신청

     

    신청기간
    3월1일 ~ 3월15일


    현재 24년 3월에는 23년 하반기 소득분에 대한 근로장려금 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 3월에 작년 하반기에 소득에 대한 근로장려금 신청을 받는 이유는 국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근로소득자들의 소득 정산이(연말정산) 2월에 끝나고, 23년 소득이 확정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기억하기 쉽게 연말정산이 끝나면 근로장려금 신청을 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만약 현재 3월 15일이 지나서 반기신청을 하지 못하셨다면 아래에서 정기신청을 하시면됩니다. 


     


     
     
    2024년에는 2023년에 비해 근로장려금에 달라진 점이 많습니다. 기존에 알고 계셨던 내용과 달라져서 근로장려금을 못받을 수 있으니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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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근로장려금 반기 소득 조건

     

    단독가구
    홑벌이가구
    맞벌이가구

     
    근로장려금 반기 신청 소득조건은 단독가구, 홑벌이가구, 맞벌이 가구에 따라 나누어집니다.
     

    • 단독가구 : 배우자나 부양가족, 직계가족 모두 없어야 합니다.
    • 홑벌이가구 : 배우자나 부양자녀 그리고 70세 이상 직계존속이 있는 가구를 뜻합니다. 만약에 배우자가 소득이 있는데 300만원 미만이라고 하면 홑벌이 가구에 속하게 됩니다.
    • 맞벌이가구 : 신청인과 배우자 각각 총급여액 3백만원 이상인 가구를 뜻합니다.

     

     

     

    가구유형별 근로장려금 소득 조건은 아래와 같습니다. 여기서 소득이란 부부합산 총 소득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주의할 점은 2022년의 소득과 2023년의 소득이 모두 아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것 입니다. 2022년은 충족하는데 2023년 소득이 아래조건을 초과한다면 근로장려금을 신청할 수 없습니다.
     

    • 🚩 단독가구 : 2,200만원 이하
    • 🚩 홑벌이가구 : 3,200만원 이하
    • 🚩 맞벌이가구 : 3,800만원 이하

     

    근로장려금 가구별 소득조건은 단독가구 2,200만원 이하, 홑벌이가구 3,200만원 이하, 맞벌이가구는 3,800만원 이하여야 합니다. 가구별 소득조건을 헷갈리기 쉬우니 잘 체크하시기 바랍니다.

     

     

    3. 근로장려금 반기 재산조건

     

    재산
    2억4000만원 이하

     
     
     
    2022년 6월 1일 기준으로 가구원 전체의 재산합계액이 2억 4,000만원 미만이어야 합니다. 여기서 재산에 들어가는 항목들은 토지, 건물, 승용자동차, 전세보증금, 금융재산, 유가증권, 골프회원권, 부동산 취득할 수 있는 권리 등이 포함되며, 부채는 차감되지 않습니다. 

     

     

     

    근로장려금 소득조건과 마찬가지로 재산조건도 2022년뿐만 아니라 2023년 6월 1일 기준 가구원 전체 재산 합계액이 2억4000만원 이상이면 근로장려금은 지급되지 않기 때문에 최근 2년간 재산이 2억4000만원 미만이 유지된 가구만 근로장려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위의 내용에서 부채는 차감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예를들어 2억원의 빌라를 소유하고 있고 부채가 1억원이라면 이 가구의 실제 순자산은 1억 원이지만 근로장려금 지급요건 심사 과정에선 1억원이 아닌 2억 5,000만 원으로 산정된다는 의미입니다. 생각보다 재산 조건이 까다롭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재산합계액이 1억 7,000만원 이상이면 근로장려금 지급액의 50% 차감되어 지급됩니다. 
     
     

    4. 근로장려금 반기 신청방법

     
    앞서 살펴본 근로장려금 반기 소득조건과 근로장려금 반기 재산조건에 부합하셨다면 서둘러서 근로장려금 반기 신청을 하시면 됩니다. 만약에 반기 신청을 놓치셨다면 아래에서 정기신청을 하시기 바랍니다.
     

     

     

     

     

    근로장려금은 2가지 경우에 따라서 신청방법이 달라지게 됩니다.

    • 🚩신청 안내문(개별인증번호)을 받은 경우
    • 🚩신청 안내문(개별인증번호)을 받은 받지 못한 경우

     
    신청 안내문을 받으셨다면, 아래와 같이 신청하시면 됩니다.
     
    (1)  ARS 전화로 근로장려금 반기 신청하기
    1544-9944 전화걸기 → 주민등록번호 13자리 입력 → 개별인증번호 8자리 입력 → 1번 눌러서 동의하고 신청 → 연락처 및 계좌번호 등록 확인 → 신청완료
     



    (2) 모바일 안내문에서 근로장려금 반기 신청하기
    국민비서, 네이버 전자문서, KT알림문자를 통해 안내문 받은 경우 모바일 안내문에서 바로 신청가능합니다. 다만, 홈택스앱 설치가 필요하오니 홈택스 앱이 설치 되지 않으신분들은 아래에서 다운로드 받으시기 바랍니다.
     
     

     

     
     
    위에서 홈택스 앱을 다운로드 받으셨으면 아래 (3)번과 같은 순서로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3) 홈택스 앱(손택스)으로 근로장려금 반기 신청하기
    홈택스 앱(손택스) 실행 → (자주찾는 메뉴)반기신청 또는 신청/제출 → 근로장려금 반기신청 → 신청하기 → ‘주민등록번호 7자리'와 ‘개별인증번호‘ 입력 → 신청
     



    (4) PC에서 홈택스로 근로장려금 반기 신청하기
    국세청 홈택스 로그인 → 세무업무별 서비스 → 근로·자녀장려금 → 반기신청 → 신청하기
     

     
     
    (5) 우편안내문에서 바로 신청하기
    신청안내문에 있는 QR 코드 스캔 → 개별인증번호가 채워진 홈택스 모바일앱 신청화면으로 이동 → 로그인없이 주민등록번호 7자리 입력 → 신청
     



    (6) 장려금 상담센터(1566-3636) 또는 세무서에서 대리신청으로 근로장려금 반기 신청하기
    직접 신청이 어려운경우 장려금 상담센터나 세무서에서 상담직원이 본인확인 후 대리로도 신청가능합니다.
     

     

    근로장려금을 서면으로 직접 신청하실 분들은 관련 서류가 필요합니다. 아래에서 다운로드 가능하오니 받으셔서 서면신청 진행하시면 됩니다.

     

     

     


     


    신청 안내문을 못받으신 분은 아래에서 신청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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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근로장려금 반기신청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근로장려금에 관한 모든 내용이 이 블로그에 담겨 있으니 다른 글들도 살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

     

    ⬇️  근로장려금 체험 수기  ⬇️

     

    아래의 글들은 국세청에 있는 근로장려금으로 새로운 삶의 활력소를 얻으신 분들의 실제 체험수기입니다. 

     

    고요한 밤하늘에 떨어지는 별똥별처럼...

     

    고요한 밤하늘에 떨어지는 별똥별처럼... 너는 감동이어라...나는 일 년 중 네가 오는 날만 기다리는구나 너는~
    자랑스러운 대한의 국민을~ 미소 짓게 만든 미소천사이다. (근로·자녀장려금)

    나는 7살 무렵 유치원 하굣길에 2층 높이에서 떨어져 낙상을 당해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엄청난 금액의 치료비와 약제비로 나를 치료하는데 우리 집 전 재산을 써버리게 되었다. 아버지는 원양어선을 6년을 타시며 그 먼 타국에서 고생한 돈을 나의 치료비로 모두 쓸 수밖에 없었고 나만 아니었음 우리 집이 이렇게 힘들어지지 않았을 거란 자책감은... 내가 커가면서 평생 나의 마음속에 죄스러움으로 남게 되었다.

     


     
    생계에 도움을 보태시려는 어머니 역시 새벽에 택시 세차하는 일을 다니시며 남들 자는 시간 새벽 3~4시에 나가셔서 아침에 돌아오셨고 우리를 등교시키시곤 하셨다. 가끔 비가 오는 새벽이면... 여자인 어머니 혼자 캄캄한 밤에 바닷길을 걸어서 택시 회사로 가신 다는 걸 알고 난 후 얼마나 무서웠을까... 생각하면서 엄마 가지 말라며... 우는 나에게 어머니는 나를 달래시며 엄마 금방 갔다 올게. 자고 있으면 올거야... 하시며 나를 안심 시키곤 하셨다...그러고 어머니가 나가시고 나면 나는 소리 없이 이불을 덮어쓰고 울곤 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내가 빨리 어른이 되어 부모님을 편하게 해드릴 거라고….

     



    시간은 흘러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고 진학을 하고 싶었지만 오빠가 이미 학자금 대출로 학교를 다니고 있어 나까지 빚을 지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일 년 만 진학을 미루기로 하며 취업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그때 갑자기 대한민국을 뒤흔든 IMF가 터졌고 나의 주변 친구들 가정에 폭풍전야가 시작되었다.

     



    우리 집 역시 폭풍은 피해 가지 않았다. 집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려 했던 오빠는 친구의 권유로 다단계에 걸려들어 집에 빚을 지게 만들어 놓았고 아버지는 회사 도움으로 돈을 당겨 빚의 일부를 갚아 주셨지만 전부 해결하진 못하였다. 그리하여 아버지는 앞길이 창창한 아들이 신용불량이 될까 하는 걱정에 아버지 앞으로 빚을 떠안으셨다. 아버지는 국내선의 선장으로 일을 전향하셨고 조금씩 빚을 갚으셨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나는 대학생이 되었고 학자금 대출로 학교를 다니며 밤에는 아르바이트하며 받은 월급의 반은 부모님께 보태어 드렸다. 그 당시 나의 꿈은 사업가로 성공하는 것이 꿈이었지만 그 시대적 배경과 여자로서 시작할 수 있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기에 미용을 해서 돈을 벌고 다른 사업을 하자라고 마음을 먹고 대학을 졸업함과 동시에 미용학원에 등록을 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4년이라는 긴 인턴 생활 끝에 한 브랜드샵의 디자이너가 되었고 몇 년의 디자이너 생활로 모은 돈으로 10평 남짓 작은 샵을 차리게 되었다.

     


    조금씩 자리를 잡아갈 무렵 오빠가 오토바이 사고를 당했고 다리에 철심을 박게 되는 큰 중상을 입는 일이 일어났다. 오토바이 사고 법규상 동승한 친구의 수술비까지 오빠가 부담해야 했고 수술비가 몇천만 원이 나왔다. 이 사고로 아버지가 또다시 빚을 안게 되었다. 이때부터 우리 집은 일어나기 힘든 시기로 접어들었다.

     



    아버지는 어찌해서든 돈을 빨리 갚으려는 심정으로 무리하게 선원들에게 선금을 주고 채용한 뒤 출항을 하려 했으나 선원들이 돈만 받고 나타나지 않는 상황까지 겹쳐 아버지는 혼자서 이 모든 고초를 겪으셔야 했고 결국 심적인 스트레스가 심하셨는지 암이라는 병을 얻으셨다. 그때 정말 죽고 싶었다. 왜 안 좋은 일은 이리도 한꺼번에 터지는 건지…

     


     
    하늘에 신이 계신다면… 우리 아버지 살려 달라며 수없는 기도와 눈물로 간절히 빌었지만... 아버지는 한 번의 수술을 받으셨고 1년이 채 되지도 않아 하늘나라로 가셨다….그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이 죽고 싶을 만큼 한심했다. 내가 좀 더 빨리 디자이너가 되었더라면... 좀 더 빨리 장사를 시작했더라면... 아버지를 더 큰 병원으로 한 번만 모셔갈 수 있었더라면... 하는 후회와 가슴 아픔에... 나 자신을 책망하며 하루하루 슬픔에 눈물로 지새웠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비 정산을 해야 했고 오빠는 오빠대로 나는 나대로 돈을 구하러 다녔다. 다행히 오빠가 다니는 회사에서 선금을 미리 당겨 받을 수 있었고 반 이상 금액은 해결이 되었는데 조금 모자란 부분은 오빠 카드와 나의 카드로 결제를 하였다. 그날 오랜만에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친구에게서 보자는 연락이 왔다. 나보다 한 달 먼저 아버지를 떠나보낸 친구였고 그날 친구와 나는 남포동의 작은 카페에서 그간 쌓아온 이야기를 풀어가며 서로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 펑펑 울었다.
    그리곤 친구가 병원비는 해결이 되었는지 걱정스레 물었고 나는 다음 달이면 갚을 수 있을 거 같다며...

     

     

    시무룩한 대답을 했다. 그러고 친구와 헤어진 뒤 집으로 돌아왔고 몸도 마음도 지친 탓인지 일찍 잠에 들었다. 그날 밤 꿈을 꿨다. 현관문에서 아버지 목소리가 들려 나는 꿈이지만 미친 듯 뛰어나가 현관문을 열었는데 문이 조금만 열린 사이로 아버지 손이 들어오며 손에는 아무것도 없지만 아버지 목소리로 (어여 어여)말씀하시듯 뭔가를 주시려는 음성만 들렸고 나는 너무 슬픈 나머지 (아빠~들어와 빨리)를 외치며 손을 잡아당기는 동시에 잠에서 깨었고, 아침이었다. 그러고 엄마에게 달려가 울먹이며 아빠 꿈 내용을 말했고 우리는 아버지가 우릴 보러 오셨나 보다... 하며 그렇게 어머님은 아침을 준비하시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어머니께서 받으셨는데 아버지가 계시던 병원에서 수술했을 때 구매하고 남은 혈액을 환불해 주겠다 하여 방문하라는 전화였고 나는 그길로 바로 병원에 들러 환불을 받고 난 후 심장이 미어지게 울었다. 아버지가 이걸 주시려고 꿈에 나오셨던 거 같아... 나는 병원 길을 내려오는 내내 아버지가 서 계셨던 병원 옥상 쪽을 바라보며 몇 번을 뒤돌아보며 울었다...아빠 내가 어제 친구 만나 넋두리한 것이 맘에 쓰이셨구나... 괜히 나 자신이 미웠고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다행히 환불받은 병원비로 카드 일부를 갚았고 조금 남은 금액은 한 달 일한 후에 결제하면 되겠다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가게로 우편물 하나가 와있었다. 국세청에서 온 우편물이었고 소득세 신고의 달 이라서 5월 안으로 신고하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가까운 세무서에 들러 신고를 하고 돌아서려는데 직원분께서 근로장려금 신고 대상자라며 신청해 보시라고 하여 신청하게 되었고 그게 뭔지 궁금해하는 나에게 세무서 직원분께서 알아듣기 편하게 말씀해 주셨다. 
    열심히 ~ 하셨기에~ 드리는 거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 말에 갑자기 밀려오는 감동은 나에겐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뭔가 내가 열심히 달려온 순간들에 보상받는 것처럼 나 자신을 위로해 주는 것 같아 너무나 감사했다. 그렇게 받은 근로장려금으로 남은 카드 값을 완납하게 되었고 오랜만에 어머님과 아버지가 함께 좋아하시던 보리밥집에 들러 세상 제일 맛있는 보리밥을 먹었고 어머님께 조금의 생활비도 드릴 수 있어 뿌듯했다. 그날만큼은 어머님도 나도 마음 편히 웃을 수 있는 날이었다.


    가뭄에 갈라져 있던 땅에 내려준 단비처럼... 근로·자녀장려금 이 우리 가족에게 준 감사함과 위로는 잊지 않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나의 국가에 감사하며 나 역시 더욱 열심히 살아 어려운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앞으로도 내 인생에 파이팅을 외친다.
     
    <PS>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순간들에 말 못 할 일들이 많겠지만 그래도 한 번 더 힘을 내어 열심히 살아보자.
    언젠가는 웃을 날도 있다는 거 그것이 세상의 희로애락

     

     

     

    아이를 키워내고 보금자리를 채워나가는 소중한 돈

     

    남편의 급여가 오르고 아이를 키워놓고 함께 일하게 된다면 장려금은 점점 줄어들고 더 이상 받지 못할 때가 반드시 오겠지만 저희 가정에 근로자녀장려금은 분명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마중물과 같은 돈이었습니다.

    저희는 아이 한 명을 키우고 있는 결혼 3년 차 30대 부부입니다. 학자금을 모두 갚고 결혼을 준비하면서 뉴스를 통해 근로·자녀장려금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거주하는 동안은 받을 수 없는 혜택이었기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는데 새로운 가정을 이루면 가능할 것 같아 열심히 검색해보았습니다. 결혼하고도 그 후년이 되어서야 받을 수 있는 돈이었지만 어디 한군데 든든한 주머니가 있는 것 마냥 반가웠습니다. 삶은 알 수 없는 것이기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비상금으로 쓸 수 있으리란 기대가 있었습니다.

     



    집값이 치솟던 시기에 결혼을 준비했기에 36제곱미터의 작은 아파트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습니다. 이자 비용을 줄이기 위해 최소한의 대출과 가지고 있는 돈에서 새 출발을 했는데 그 결정에는 당시 1억4천이 넘는 재산이 있으면 장려금이 반액으로 줄어든다는 사실이 영향을 미쳤습니다. 많은 대출을 받아 넓은 집에 거주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분위기 속에서 1억4천이라는 한계는 합리적인 결정을 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장려금뿐 아니라 덕분에 주거비를 크게 줄일 수 있었습니다.

     


    22년 8월 26일 결혼 2년 차에 첫 근로장려금 135만 원을 받았습니다. 5월에 아기를 출산한 때라 돌아서면 필요한 물건들이 계속 생기던 시기였습니다. 의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입금된 돈을 확인하고 정말 이 돈을 주는 거구나 하고 살짝 멍했던 기분이 기억이 납니다. 그저 내 자리에서 열심히 내 삶을 산 것뿐인데 나라에서 이런 응원과 격려를 보내주다니요….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그래서 사람들은 많은 돈을 벌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모든 직업이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론 적은 벌이에 위축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저는 남편이 하는 일이 가치 있다고 여기고 존중합니다. 우리의 형편은 좋아질 것이고 이 돈도 영원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을 살아갈 힘을 주는구나, 묵묵히 우리의 자리를 지켜도 되겠구나,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던 순간이었습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출근해 준 남편에게도 참 고마웠습니다.

     


     
    22년에는 정기신청으로 근로장려금을 지급받았는데 23년에는 반기신청으로 23년 6월 27일 근로장려금 126만 원과 자녀장려금 75만 원을 받았습니다. 처음으로 받은 자녀장려금인데 최대지급액이 80만 원으로 증액이 되어서 예상보다 더 많은 돈이었습니다.

     



    아이가 커가면서 더 많은 공간이 필요했고 전세가가 안정되면서 좋은 조건으로 집을 계약했습니다. 처음 집을 보러온 날 누구보다 좋아했던 것은 18개월 아이였습니다. 이전 집에서는 붕붕이를 타도 몇 걸음 갈 수도 없었는데 넓은 거실을 보고 빙글빙글 돌던 아이의 미소가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다만 이사는 체력적으로도, 비용적으로도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이사와 입주 청소는 가족들의 도움으로 최대한 셀프로 해결했지만 그동안 빌트인 가전들을 사용했던지라 새 냉장고와 세탁기가 꼭 필요했습니다. 인터넷을 열심히 검색해서 근로장려금으로 4도어 냉장고를, 자녀장려금으로는 19kg 세탁기를 구입했습니다. 냉장고가 작아 누군가 나눠주는 식재료도 받으면 어떻게 정리해야 하나 걱정이 앞섰는데 이제는 800리터가 넘는 사이즈라 문제가 없습니다. 세탁기 또한 작아 이불이라도 빨려면 큰 봉지에 싸서 세탁방을 갔어야 했는데 집에서 대용량의 빨래를 할 수 있다니 너무 좋습니다.

     


    퇴근한 남편도, 하루 종일 재잘거리며 뛰어다니던 아이도 잠든 시간... 주방 일을 마치고 식탁에 앉아 냉장고에 가득한 메모들을 멍하니 바라봅니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과연 우리가 잘살아갈 수 있을까 막막했던 순간이 참 많았는데 3년이 지나니 좋은 집에 새 가전을 가득 넣어두고 아이와 함께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있네요. 우리 집 꼬맹이는 세탁기 문을 열어 스스로 빨래를 넣고 빼는 것을 참 좋아하는데 10년 이상 고장 없이 잘 사용해서 아이에게도 어떻게 산 가전인지 설명해주고 싶습니다. 100~200만 원이 누군가에게는 금방 쓰고 없어질 돈이겠지만 저희에게는 아이를 키워내고 보금자리를 채워나갈 수 있었던 소중한 돈이었습니다. 남편의 급여가 오르고 아이를 키워놓고 함께 일하게 된다면 장려금은 점점 줄어들고 더 이상 받지 못할 때가 반드시 오겠지만 저희 가정에 근로 자녀장려금은 분명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마중물과 같은 돈이었습니다.

     

     


    내년에는 자녀장려금의 금액도 상향되고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분들도 늘어난다니 더욱 기대됩니다. 저희도 둘째를 계획하면서 또다시 한발 앞으로 나아가는 데 큰 도움을 받을 것 같습니다. 일하는 사람과 아이를 키우는